비트코인 투자의 양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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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게 투자 또는 개인적 관점에서는비트코인의 시대적 한계성때문에 양면성이 아직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단점부터 얘기하면 아직 예측하기 힘든 변동성때문에 자금의 여유가 부족할 수 있는 일반인들에게는 기존에 쓰던 달러를 기반한 법정화폐를 배반하듯이 하고 비트코인으로서 자금흐름을 유지하는게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순수한 투자라는게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을법한데 시세차익에 의한 단기적인 이익을 노린다면 그건 비트코인을 너무 좁은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비트코인이 대중화되면서 동시에 전세계에 퍼지게되는 도덕적 기류는 우리가 여유가 된다면 마땅히 비트코인을 화폐로서 이용해야할 의무가 있다는걸 알려주고 이를 보다 나서서 해주는 것이 다른 기업가들, 특히나 많은 유명한 기업인들이 먼저 나서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일론머스크도 도지코인의 행위에 대해 오해할만한 소지가 있지만 그의 기업적 사고와 인생관을 본다면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서 만든 코인 어그로조차(=투기성코인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조차) 세상에 있어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부자(세력)들의 고정비용에 기반한 투자관점에 대해선 비트코인의 내재된 가치는 투자를 악으로 규정한다 할지라도 웃도는 가치를 갖고 있으며, 사람들이 되도록이면 투자로서 보는건 지양해야하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위의 이유로 무조건 지양될 수는 없는 노릇이며 이것은 우리 사람들이 모두나 지닌 세상에 대한 자연적인 한계에 불과하다.
'투자'로서도 비트코인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가치를 깨우치며 점점 시장참여자를 확대해나갈 것이고 비트코인이 현재 세상에서 작동하는 방식은 자신의 가치를 무한히 확대해 나가는게 막을 수 없는 힘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즉슨, 비트코인의 최대발행량이 정해져있지만 계속해서 가치가 상승한다는 것이 비트코이너들이 대부분 자연법으로써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에 투자관점으로 한정해서 바라본다해도 확실한 이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또 사토시가 비트코인을 창시하고 잠적한 것도 이런 시장참여의 흐름을 어느정도 예상을 충분히 했었다.
특히나 비트코인같은 좀더 표면적인 것보다 내재된 가치를 해석해야하는 기술인 경우엔 일반 대중들의 받아들이는 속도가 느릴 수 밖에 없지만 그런 느려터진 대중들의 속도에도 세상에 실존적인 영향이 있음을 많은 사람들이 모르기때문에 오해하고 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해 좀더 아는사람이라면 공산주의는 집단적 정체성을 개인보다 더 중요시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주하는 것처럼 단순히 종족 집단주의를 내세우는게 아니라 민주주의에 속한 우리, 즉 개개인 하나하나가 사회에 도덕적 가치를 반영하면서 이끌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대중들의 단순히 투자의 관점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비트코인과의 가치를 비교할게 안 될 정도라 생각하며 개인이 어찌할 수 없다는 관념은 지젝이라는 인물이 가진 사상처럼 사회주의로 향하는 좋지않은 것이다.
좀더 깊은 인문학을 알게된다면 그런 것들이 스스로 진실로서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워렌 버핏은 빌게이츠나 조지 소로스처럼 그의 사회적 행동을 봐왔을때 부패한 인물로서 보는게 가깝고 지금 가장 유명인인 일론 머스크는 자기 회사 대차 대조표에 비트코인을 다량 보유하고 있다.
사람들은 너무 고정비용의 관점에서만 비트코인을 해석하는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워렌 버핏을 필두로한 비트코인 반대자들은 자신들이 달러시장에서 패권을 장악하고 있기에 그에 대한 방어적 행위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투자자들이 투자할 때 고정비용을 어떠한 요소의 하나로서 생각하는게 좀더 맞는거같고 투자는 고정비용과 더불어 잠재성, 현재가치 등의 요소들을 저울질하면서 하는거라 생각하는데 잠깐 여기서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관점을 지나치게 축소하는 경향이 있는거 같아서 지금 현재 주류경제학에 반대적 입지를 가지고 있는 오스트리아학파에 대해 알아봤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왜냐면 경제학이란 것도 역사교과서 왜곡사례처럼 부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 실제로 세상에 드러나면서 보여주는 현상이 오스트리아학파의 당위를 주장해주며 이때까지의 주류 경제학파들을 엿먹이고 있는 중이다.
루나 사태는 비트코인 반대자들의 정말 좋은 먹잇감이고 마침 때좋을 때 여론을 형성하면서 코인 투자자들의 위축이 비트코인에도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워렌 버핏같은 사람들이 그러기를 원하고 있기때문이고 고정 비용이라는게 단순히 유지비용을 넘어 외적인 비용(시간)같은걸 포함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행위 모든 근간에는 '공리'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면 좋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도덕적 행위에는 어떠한 논리보다 믿음이란 것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는데 많은 비트코이너들이 괜히 일반인들이 많이 두려워하는 변동성을 보고도 비트코인을 쓰는게 아니다.
고정비용은 진정한 가치를 아는 이들에게 있어선 고려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고정비용 관점보단 투자의 위축성을 누군가 유도하고 있는 중이다.
투기에 대한 가치가 사람들을 지배하는건 어쩔 수 없는 사회적인 현상이지만 비트코인을 하는데 있어선 시장참여자들이 단순한 투자를 넘은 오히려 도덕적 가치를 따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또한 물리적으로도 비트코인을 뒤집기는 어렵고 현재 비트코인의 가장 큰 적대수인 주식시장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비트코인과 알트코인은 단순히 탈중앙화 유무로 인해서도 너무나도 현저한 차이가 있기에 서로 다른 두 배는 비트코인이 훨씬 거대할 것이고 이는 비트코인이란 배가 멈추는 일이 없이 세상의 끝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고 개개인이 어떠한 고결하고 도덕적 개체가 된다면 화폐는 멸종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기위해선 아직 인류가 가야할 길은 너무 멀고 아직은 화폐에 계속 의존해야 하는데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화폐에 비트코인은 화폐에 투명한 속성을 부여해주었기에 우린 비트코인을 축복이라고 부르는 것이고 신의 화폐라고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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