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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과 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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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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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게오르그 루카치라는 사람이 자본주의의 한 징후로서 한 말인데요.

그냥 무엇이든 물건으로 만들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상품화라는 말이 더 쉽겠네요.

이것도 상품화, 저것도 상품화, 무엇이든 팔고 팔릴 수 있는 물건이 된다는 건데요.

다시 말해, 물화란 욕구를 물상화 한다는 거지요.

냉장고나 TV, 에어컨이나 아이 패드 같은 가전제품이야 그냥 당연한 상품으로 인식되는 건데

예를 들면, 요즘에 그런 아르바이트 있잖아요. 이성 친구가 되어주는 아르바이트, 또는 가족이 되어주는 아르바이트, 이른 바 역할 아르바이트.

이렇게 관계 자체도 상품화가 되고 있죠. 돈 있으면 관계도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물화란 돈만 주면 다 된다의 사고 방식을 뒷받침해주고 있기도 하죠.

얼마 전에 사촌 동생들을 만났는데 이 친구들이 말하기를 자기네는 믿는 종교는 없는데 돈은 믿는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들은 얘기에요. ㅎㅎ

씁쓸하긴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얘기이기도 해요. 요즘 세상에 돈 주고 살 수 없는 게 뭐가 있습니까.

이러한 세상에서는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도 있다,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오히려 희귀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코 그럴 수 없을 거라 여겨졌던 관계 만이 물화가 되느냐, 그렇지도 않죠.

이게 이념의 시장으로 넘어오면 생각 자체도 물건이 되고 고를 수 있는 상품이 됩니다.

즉 살아가는 삶의 방식 또한 시장에 널려 있는 다양한 상품처럼 고를 수 있고 돈 주고 살 수 있는 물건이 됩니다.

이게 뭐 대단한 일이냐, 물을 수도 있는데요.

나는 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세상에는 진정한 삶이라는 걸 고민하는 부류들이 있어요.

어떤 게 진정한 삶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걸 고민하는 부류들은 최소한 삶을 멋대로 살아서는 안된다는 윤리 위에서 움직이는 것 같아요.

진정한 삶, 가치 있는 삶, 행복한 삶은 물건처럼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요.

그리하여 여기에는 일종의 당위가 끼어들게 됩니다. 삶은 무분별한 선택의 연속이 아니라 어떤 진정한 삶을 실현해나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 의식 위에 예술이 있고 철학이 있는 것이라고요.  

여기서 당위는 자본주의가 별로 안좋아하는 거지요. 자유롭게 생산하고 자유롭게 구입하는 자본주의의 삶은 당위조차도 하나의 상품의 세계로 포섭합니다.

물화가 되는 거지요.

서점에 가면 삶에 대한 여러 이론들이 꽂혀 있습니다. 누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하고 누구는 저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하죠.

누구는 자본주의를 예찬하고, 누구는 사회주의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누구는 제 3의 세계를 건설해야 한다고 하고, 누구는 그냥 도 닦아서 성불하자고 하고, 누구는 예수 잘 믿어서 천국 가자고 하죠.

이 모든 이론들이 저마다 진리를 자임하며 서로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념의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학 서적들 또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공부가 어려서 잘 모르겠는데요. 역학이 어떠한 삶의 이론을 제기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이해가 깊지 않아요.

제가 이해하는 바에 따르면 사주팔자는 삶의 겸허함 같은 것을 가르쳐주는 학문인 것 같아요.

잘났다고 하지만 누구도 잘난 사람 없고, 못났다고 하지만 누구도 못난 사람 없고

때로는 부족한 오행 때문에, 때로는 과한 오행 때문에

팔자 안에서 울고 웃는 사람들의 파노라마 같은 거죠.

따라서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고, 세상을 원망치 아니하며, 받아 들이고, 이게 나란 존재구나 하고 이해하는 것.

비속하고 괴상한 나를 이해하고 그리하여 나 못지 않게 비속하고 괴상한 타인을 이해하는 것.

이러한 이해를 깊게 하는데는 역학 만한 학문도 없다고 봅니다.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이해냐고요. 저는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삶에서 빚어지는 절망과 갈등의 반 이상은 결국 나 스스로와 남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 아닐까요.

그러나 이건 저의 시각이고요. 또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분도 계시겠죠.

자, 이제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떠도는 모든 이론이 그러하듯 역학 또한 물화 즉, 상품화의 세례를 받게 됩니다.

작게는 언제 이사를 갈지부터 시작해서, 여자는 언제 들어오며, 시험이 붙겠느냐 그렇지 않겠느냐,

돈은 얼마나 벌겠느냐 등등으로 역학은 손 쉽게 소비되고 버려집니다.

역학만 그렇지 않죠. 인문학은 또 어떤가요. 이런저런 현대 사회의 성공을 위한 처세술에 갖은 철학자의 말이 다 인용되고 있습니다.

인류사 이래  만들어져온 여러 갈래의 인생 철학, 삶의 양식들은 코드화되고 포즈화되어

단지 자신의 내용 없는 삶을 염색하고, 과시하는 도구 이상이 되지 않고 있지요.

이건 뭐랄까. 이건 마치 7,8십년대 대학생들이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기 위해 청바지 뒷주머니에 TIME지 하나씩 꽂고 다니던 식의 귀여운 허영과 같습니다.

저 대학 다닐 때도 괜히 니체 책을 들고 다니며 니힐리즘이 어쩌니 떠들던 친구가 있었는데요. 지금은 뭐 열심히 회사 다니고 있습니다.

삶의 양식들이 물화되는 건 물화되는 건데 역학이란 학문의 입지가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요소는 모두 알고 계시다시피,

첫째는 팔자가 정해져 있다는 숙명론이 인간의 노력과 힘을 너무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근대의 관념과 맞지 않기 때문이고

단도직입적으로 팔자의 근거가 뭐냐고 묻고 들어오는 과학주의적 태도 때문이죠.

아~ 설 곳이 없습니다. 설 땅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하나 주어진 문제에 대해 당신은 서강대 정도 들어가겠네 하며 실력을 쌓을 뿐이죠.

그러나 역학을 통해 삶의 가치와 행복과 삶의 의미를 배운 사람에게는요.

이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아져요.

역학이라는 것이 단순한 사술에 불과해진다는 것이 영 찝찝하고 영 아쉬워요.

이건 비단 역학만의 문제가 아닐 겁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진정한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 전부의 문제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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