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글) 오직 돈과 물질만이 중요해진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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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라는 개인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삶의 의미는 무엇이고, 내가 인간으로서 추구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나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고 있어.
그리고 사회도 그런 답을 제공해 주지 않지.
이런 상황에서 내가 가진 유전자가 더 이상 존속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돼.
최근 경제 유튜버 슈카 님의 '슈카월드 코믹스' 채널에서 '가치 상실의 시대'라는 영상이 올라왔어.
슈카 님은 일본 출장 중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모든 걸 돈으로 환산해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해.
그는 아이 집 가격, 학생들의 취업 여부 등 모든 걸 돈과 연결 지어 질문하며 현타를 느꼈다고 해.
이 영상은 요즘 한국 사회가 모든 가치를 돈으로 통합해 추구할 가치가 거의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어.
이 현상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야.
다른 많은 나라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고, 지금 시대에만 있는 것도 아니지.
이미 약 80년 전 호르크하이머의 '도구적 이성 비판'에서 가치의 상실을 언급하고 있어.
당시 유럽 사회는 두 차례 거대한 전쟁을 겪었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희망적인 부분이 많았어.
호르크하이머는 미국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대한 불안감을 느꼈다고 해.
'도구적 이성 비판'에서 호르크하이머는 이성의 개념 자체가 옛날보다 많이 변화했으며, 그 변화가 인류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어.
전통적으로 이성에는 주관적인 면모와 객관적인 면모가 섞여 있었어.
현대인들에게 이성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대부분 '나의 판단력' 혹은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대답해.
이는 주관적인 의미의 이성이야.
하지만 과거 사람들은 이 세상에 객관적인 법칙이 존재하며, 우주는 이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어.
이성은 단순히 주체적인 능력일 뿐만 아니라, 주체가 객관적인 세계와 조응할 수 있는 능력, 나를 넘어서는 세계의 원리를 잘 파악할 수 있는 능력으로 여겨졌어.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원리는 과학적인 원리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원리도 포함해.
과거 사람들은 세상에는 물질적인 원리뿐만 아니라 인간이 따라야 할 윤리적인 원리도 존재한다고 생각했어.
이성의 능력을 발휘해 이를 찾고, 그에 따라 사는 것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이라 여겼지.
하지만 근대 시대를 거치면서 이런 객관적 이성의 존재를 믿는 아이디어는 급격히 사라졌어.
호르크하이머는 영미권 철학에서 특히 이런 특징을 강하게 찾아볼 수 있다고 주장해.
대표적으로 경험론은 주체가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정보, 즉 경험적인 정보를 잘 조합해 산출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봐.
그렇다 보니 인간으로서 따라야 할 원리 같은 것을 믿지 않게 되었고, 주체는 단순히 외부 정보를 잘 받아들여 만족하는 삶을 추구하게 되었지.
영미권의 윤리학에서는 공리주의 전통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어.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것이지.
이는 객관적 이성을 믿는 사고방식과 상당히 달라.
객관적 이성을 믿는 사람들은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불행하더라도 인간으로서 추구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
그러나 경험론 위주의 철학이 발달하면서 주관적인 만족이 최고라는 생각이 퍼지게 되었어.
이성은 자신 스스로 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도구가 되어버렸어.
이성은 목표를 효율적으로 실현하는 도구가 되었고, 목표는 행복이나 경제적 성과로 설정되었지.
이 과정에서 인간의 자발성은 상실되었고, 물질과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어.
가치 자체를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이 감퇴하면서 과학주의가 나타났어.
실험이나 관찰을 통해 검증 가능한 것만이 유일하게 타당하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이성은 도구적 역할에 머물게 되었지.
이런 사회적 변화 속에서 호르크하이머는 현대 사회가 공허 위에 세워져 있다고 보았어.
현대 사회를 유지하는 데는 우상이 필요하며, 파시즘, 국가주의, 상업적 물질주의 등이 그런 역할을 했어.
각 개인은 자신이 타고난 생물학적 본성에 따라 특정 만족을 추구하는 기계로 존재하게 되었지.
요즘의 행복 심리학도 비슷한 맥락에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행복을 추구하게 해.
사람들은 각각의 신체 활동이 가진 고유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고, 산책도 건강을 위한 활동으로 환원되었어.
각자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단일한 목표를 추구하게 된 것이지.
호르크하이머의 주장을 다시 검토하면서 놀라운 점은 약 80년 전에 이미 지금과 같은 사회 문제를 인식했다는 거야.
그러나 현대 사회는 여전히 물질주의 우상을 강화하면서 유지되고 있어.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믿었던 가치가 허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올 수 있으며, 이는 대한민국의 저출산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어.
나는 저출산을 꼭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아.
이는 사회가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서 발생한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어.
우리는 다시금 인간의 정신과 자발성의 힘을 느끼고, 각자가 가치를 창조하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해.
이는 물질주의 우상을 강화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정신적 가능성을 주목하는 데 있다고 생각해.
호르크하이머의 주장에 대해 많이 언급했지만, 그의 모든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야.
나는 객관적 이성의 개념이 낡았다고 생각하며, 현대 사회는 개인의 가치 창조성과 도전의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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