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난한 자들은 부자들을 증오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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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근에 2가지 의문을 가졌다
“왜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을까? ”
“왜 엉터리 부동산 정책에 박수치고 환영하는 무주택자들이 많을까? “
이런 의문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 해답을 찾아보았다.
”원한과 분노” 때문이다.
최근에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상대적 빈곤감이 늘어난 이유는 양극화, 카카오톡같은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의 발달, 저성장 경제 때문이다.
우선 양극화 현상을 보자!
근로자중에 15%만 대기업에 다니고 85%는 중소기업에 다닌다.
근로자의 1/3은 비정규직이다.
근로자의 평균 월급은 약 320만원 정도이다.
무주택자가 45%나 된다.
아침 출근길에 근로자만 지하철을 탄다고 가정하면, 한칸에 100명이 탄다면 이중에 85명이 중소기업에 다니고 33명이 비정규직이며 평균 연봉은 3800만원이고 절반은 무주택자이다.
당신은 어떤가?
이 수치를 보면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는 사람이 여러분의 생각보다 많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양극화 현상이 한국에서만 일어나고 유독 심한 것도 아니다.
전 세계가 다 그렇다.
전 세계가 무한경쟁을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는 사람은 많아졌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인터넷 SNS 시대로 우리는 더욱더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게 되었다.
과거에는 친구나 이웃이 어떻게 사는지 몰랐다.
그런데 SNS시대 도래로 말하지 않아도 친구나 이웃이 어떻게 사는지 실시간 보게되었다.
누구는 편의점에서 학비 마련을 위해서 알바하고 있는데 잠시 쉬는 동안에 페이스북을 보면 부자집 친구는 해외 여행지에서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한 사진을 올려 놓은걸 보게 된다.
그러면 힘이 빠지고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한가?
왜 우리 부모는 가난할까?
우울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기 쉽다.
SNS만 보면 모두가 왕자와 공주처럼 귀족처럼 사는 듯이 보인다.
사실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SNS에 자신이 얼마나 가난하지 않는지를 증명하려는 듯 필사적으로 뽐낸다.
이러한 이웃이나 친구의 SNS를 보고 우리는 의기소침하고 우울하게되기 쉽다.
인터넷 시대를 사는 우리는 SNS 때문에 과거보다 더욱더 상대적 빈곤감을 느낀다.
저성장도 상대적 박탈감을 심화시킨다.
경제가 고도성장을 할때는 취업이 잘되어서 사회적 약자들도 희망을 가지고 상대적 박탈감을 덜 느낀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저성장 국면이 10년 넘게 이어지고 계속 해마다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는 저성장 시대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저성장시대에는 상대적인 빈곤감이 더욱 커져보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면 월급은 잘 안올라가지만 자본소득(부동산,주식)은 여전히 커기 때문이다.
취업도 어렵고 월급은 잘 안오르는데 부동산과 주식가격만 올라가기에 이미 자산을 취득하지 못한 계층의 상대적 빈곤감은 더욱더 커지게 된다.
지금까지 글을 정리하면 양극화, SNS시대, 저성장 때문에 우리는 상대적 빈곤감을 더욱 크게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상대적 빈곤감과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이 늘어났다.
그런데 이런 감정이 그 자체로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원망과 분노’의 감정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원망과 분노가 왜 문제인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면 세상을 원망하기 쉽다.
“貧而無怨難(빈이무원난)”
“가난하면서도 원망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공자님이 하신 말씀인데 살면서 느껴보니 진짜 맞는 말이다.
가난 때문에 나라를 원망하게 되었다는 한 연예인의 솔직한 고백을 들어보자.
"예전에 할머니들이 순대를 팔고 계셨는데 그 앞을 지나가면 순대 꽁다리를 주셨다.
그걸 얻어먹으려고 맨날 그 길을 다녔다.
내가 맨날 똑같은 운동복 입고 꾀죄죄하게 하고 다니니깐 아는 거다.
"'난 왜 이렇게 살아야 되나'라고 생각하면서 이 동네에서 많이 울었다.
배고플 때가 제일 절망적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게 날 자극 시켜서 똑바로 살아야겠구나 싶었다.“
"난 어릴 때 나라를 원망했다. 나라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잘 사는 사람은 잘살고, 난 밥도 못 먹고 사니까.
우리 말고도 동네에 못사는 사람도 많았는데 왜 우리를 이렇게 방치해두나 싶었다.
근데 태극마크를 다니깐 생각이 좀 달라졌다.“
-안정환-
원망과 분노가 왜 위험한가?
가난하면 상대적인 빈곤감을 가지기 쉽고, 만약에 상처라도 받게되면 원한과 분노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부자에 대한 원한과 분노 감정은 공동체 사회를 파괴할 수 있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지존파의 예를 들어보자.
지존파는 돈을 빼앗기 위해서 부자를 납치하고 살인하고 시체를 소각하는 소각장까지 만들었다.
지존파의 강령은 ”부자를 저주한다. 10억을 모을 때까지 범행을 계속한다“였다고 한다.
무고한 커플을 납치해서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강간하고 죽였다. 시체는 소각했다.
인육을 먹기까지 했다.
지존파 7명 대부분은 사형을 당하기 전에 한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참회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끝까지 참회하지 않은 한명은 자신의 손으로 어머니를 죽이지 못한게 천추의 한이라고까지 말했다고 한다.
지존파 그들은 왜 괴물이 되었을까?
모두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특히, 지존파의 두목 김기환은 어린 시절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그런데 미술 시간에 돈이 없어서 크레파스를 준비하지 못했다고 한다.
선생님은 김기환을 웃통을 벗기고 복도에 서있게 하는 벌을 세웠다고 한다.
그때 김기환은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꼈다고 한다.
김기환은 어린 시절 자기에게 선생님이 그런 수치와 모욕을 주는 일이 없었다면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맞다. 맞는 말이다.
어린 시절의 원한 감정이 부자에 대한 분노를 만들게 한 것이다.
그러나 그 분노로 인하여 실제로는 부자가 아닌 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희생자가 되었다.
부자와는 거리가 먼 어렵게 공장 다니는 여공, 어렵게 망해가는 중소기업을 살리려던 중소기업체 사장, 이들이 지존파의 실제 희생자였다.
그렇다...
원한감정이 우리사회의 괴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원한 감정은 사회 공동체를 파괴하고 병들게 한다.
원한 감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해야 한다.
다시 처음에 내가 제기한 2가지 의문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왜 내로남불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민주당을 지지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부자와 권력자에게 원한감정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민주당을 지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동안 억울하고 부당한 대우나 차별 멸시를 당했기에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믿으며, 부자에게 원한 감정을 품은 사람들은 자신의 원한 감정을 풀어주겠다고 나선 민주당을 같은 편이라고 지지할 수 있다.
게다가 가난과 차별 그리고 낙인으로 원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지금 가난하게 사는 이유는 무능이나 게으름 때문이 절대 아니고 부자들이 부당하게 다 해쳐 먹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면서 ” 당신들의 바닥을 기는 자존감을 되찾게 해주겠다“라고 약속하였다면 민주당을 지지할 수 있다고 본다.
어쩌면 민주당이 낙마하면 자신들의 편이 되어줄 진영이 붕괴되어서, 그동안 받은 멸시와 차별에서 벗어나 자존감을 회복할 기회를 박탈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계속 민주당을 지지하는 건 아닐까?
민주당 의원들이 개인적으로 아무리 많은 도덕적 결함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자신이 그동안 격은 억울한 원한과 멸시 그리고 지역적 낙인과 차별을 치료해주고 바닥을 기는 자존감과 명예를 회복시켜줄 수 있다고 기대했다면 악마라도 지지하고 응원하고 싶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그런 이유로 지지했다면 그들은 원한 감정과 분노에 사로잡혀서 도덕을 외면했다는 걸 부정하긴 어렵다.
결국 원한 감정에 휘둘린 도덕의 파탄이다.
그들은 민주당을 지지하는게 아니고 부자에 대한 원한 감정과 분노를 표시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왜 엉터리 부동산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을까?
무주택자도 학창시절에 경제학을 배웠을 것이다.
그런데 왜 무주택자들은 경제학적으로 볼 때 집값을 올리는 엉터리 부동산 정책을 지지했을까?
왜?
왜?
인간은 원래 논리와 이성보다는 감정이 우선이다.
흄은 이성은 감정의 노예라고 했다.
흄은 인간이 원래 그렇게 엉터리 불량품으로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감정이 이성을 압도한다.
원한 감정이 자리한 곳에는 이성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우리 편이 내놓은 정책이니 무조건 우릴 위한 정책임에 틀림없다고 철석같이 믿기 쉽다.
부자에 대한 원한감정으로 부자를 혼내면 나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믿기 쉽다.
이러한 감정에 딱들어 맞는 부동산정책을 문재인 정권이 엄청나게 내놓았었다.
다주택자 양도세 강화.
재개발 재건축 규제 강화,
분양가 상한제.
이들 정책은 경제학적 원리로 보면 모두 공급을 억제하여 집 값을 끌어 올리게 된다.
그런데도 무주택자들은 이러한 정책에 대해서 박수치고 환영했다.
왜?
이들 부동산 정책이 모두 부자를 때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원한 감정에 사로잡혀서 복수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정책을 환영한 것이다.
아무튼 부자에 원한 감정을 가지게 되면, 부자들의 주장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으며. 같은 편인 가난한 사람들의 주장은 아무리 엉터리라도 쉽게 믿게 되는 것 같다.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이 자신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부동산 정책을 내었을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건 아닐까?
문재인 정권이 내놓은 부동산 정책이 반시장적이고 경제적 논리로 볼 때 오히려 집값을 끌어 올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나에게 그동안 짱돌을 날렸던 무주택자들이 그러한 증거이다
주택정책과 관련해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다!
돈과 경제는 숫자로 나타나고 감정적이나 호소 그리고 선동으로 만들 수 없다.
집값도 그렇다.
집값은 정치와 진영논리가 아닌 수요공급의 경제원리를 따른다.
집값은 경제논리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집값에 정치적 논리로 대응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수학이나 물리학 문제를 정치로 어떻게 정답을 찾나?
마찬가지로 집값도 경제학으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정책이라고 해도, 경제정책은 경제논리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경제는 경제논리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정치문제는 진영과 이념에 따라서 달리 말할수 있고 정답이 없을 수 있지만, 경제는 정답이 있다.
경제는 진영논리가 적용이 안되는 분야이다.
그런데 많은 사회적 약자와 무주택자들이 사회적 강자와 부자에 대한 원한 감정으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는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엉터리 경제정책에 박수치고 환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비상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나?
인간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또 인간은 객관적 진실보다는 진영논리에 따라서 선택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 근원적으로 이렇게 된 이유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원한감정과 분노 때문이라고 본다.
원한 감정과 분노는 왜 생기는가?
앞에서 지적한대로 양극화, SNS,저성장의 토대위에 결정적 방아쇠를 당긴 것은 천박한 갑질 문화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평화스럽고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사회적 약자들이 원한 감정을 품지 않게 배려해야 한다.
자유시장경제의 최대 적은 갑질하는 천민 자본주의자이다.
내가 보기엔 자유 시장경제를 가장 위협하는 자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갑질하는 자본주의자이다.
우리 사회의 안녕과 평화를 가장 위협하는 사람은 바로 갑질하는 일부 천민 자본주의자들이다.
예를 들어보자!
돈 조금 맡겻다고 PB를 무슨 하인 부리듯 심부름시키며 갑질하는 사람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하대하고 큰소리치며 갑질하는 사람
직원에서 물컵 던지고 쌍욕하고 윽박지르는 몰상식한 오너
없는 사람 무시하고 잘난 척하는 사람들
이러한 사람들이 사라져야 부자에게 원한 감정을 가지는 사람이 생겨나지 않는다.
원한 감정을 가진 피해자를 만들지 않도록 가진 자들이 더 조심해야 한다.
갑질하는 천민 자본가들은 중죄에 처해야 한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부자가 항상 더 겸손하고 조심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말도 안되는 엉터리 같은 일들이 사라질 것이다.
내 생각이 그렇다.
일상에서 모두가 돈자랑 말고 겸손하게 살자!
거창한 이념이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실 생활속에 개인의 조그만 행동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고 믿는다.
아파트 경비원에게 먼저 인사하고
버스나 택시 기사분에게 상냥하게 인사하고
식당가서 종업원에게 상냥하게 대하고
청소부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 상처주지 않게 조심스런 행동은 누구나 쉽게 할수 있는 일이다.
임대주택도 많이 지으면 좋겠다.
각자 할 수 있는 형편에서 조금씩이라도 기부하는 문화도 정착되면 좋겠다.
이런 개개인의 작은 행동이 우리 사회의 위험한 원한 감정과 분노를 조금이라도 진정시킬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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